황금 연휴의 끝물이 다가왔다. 다시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큰 좌절감이 느껴지지만 방법이 없다. 그저 겸허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절망에 빠지는 흔한 원인은 사회에서 고립되어 자신의 불행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오고 행복한 시기가 온다. 누구에게나 끝이 있고 한계가 있다. 정답은 없지만 때론 넓게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항상 미래를 걱정하고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100년의 그래프를 완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완벽한 그래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온전했던 그래프도 타인에 의해 쉽게 허점이 발견되었다. 물론 주변적인 요소나 운적인 요소도 작용하겠지만, 기대기에는 어려우므로 최대한 배제하고 그려나갔다. 항상 그 결론은 현재에 집중하자였다. 어떻게 보면 미래도피적인 결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이기도 한게 뿌리를 바꾸면 그래프의 시작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요즘 살아가다 보면 세상에는 이미 허구의 답이 정해져 있음을 느낀다. 우리 화법도 그렇다. 만일 누군가 음식을 해주었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맛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때의 답은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해져 있다. 맛있다. 맛이 아쉽든 보통이든 맛있든 맛있다이다. 단지 비언어적인 부분에서의 차이일 뿐이다. 이것이 곧 남을 위한 행위이고 남에 대한 예의이며 사회생활의 기본이라고 배운다. 정말 그러한가? 나는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안정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태롭다 생각한다. 왜 남에게 조언을 건네는 것이 악인가? 왜 비판적인 표현이 부정적인 표현과 연결되는가? 음식 얘기에서 너무 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모든 것들이 그렇다. 이미 위를 향한 우리의 답은 정해져 있다. 당신이 옳습니다. 당신의 의견이 맞습니다. 당신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때 나는 발전이 없는 사회에서 벗어나 항상 서로에게 건강한 비판이 있고 발전이 있는 과학계를 꿈꿔왔을지도 모른다. -음식이 그저 그렇다고 해서 혼난 어느 아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