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만에 돌아왔다. 아무래도 중요한 시기라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힘든 시간이 상당했다. 처음 세특을 받고 천천히 읽어 보았는데 어디부터 바꿔가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물론 열심히 작성한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세특들도 많았지만, 조금 아쉽거나 내용이나 인과관계가 잘못된 것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하루에 약 2개씩 수정해 갔다. 수정이라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먼저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해야 하고 선을 지키면서 말씀드려야 하며 시간을 어느 정도 할애해야 한다. 누가 이걸 하고 싶겠는가? 성적은 감정이 없지만 세특 수정은 잘못하면 정신적인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최대한 공손하게 말씀드리려고 하였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부탁드리고 결과를 받으며 ‘나’라는 존재와 내가 어떤 탐구를 해왔는지를 좀 더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고쳐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부스 운영과 동아리이다. 동아리는 저번에도 말했지만 늦게 준비가 되어 늦게 물품을 구입하는 바람에 마감 10일 전에야 준비가 되었고 부스는 추가 실험을 원했으나 실험 주제 잡기가 쉽지 않아서 늦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겨우겨우 보고서 작성을 완료하여 약 마감 5일 전쯤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2일 쯤 지나고 기재 내용을 확인하였더니 부스 운영은 1500바이트 중 500바이트가 적혀 있고 동아리는 실험 제목과 잘못된 결과만 남아 있는게 아닌가. 물리학과 동아리, 개세특은 상당히 중요한 세특이기에 수정이 불가피한데 작년에 한문장 바꿀려다 10분 동안 털린 기억이 있어 사람 본성상 바꾸러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미래를 위해 받아들이자는 마인드로 찾아가 조곤조곤 말씀드렸다. 참고로 이 선생님은 추가적인 요약본 제출을 받지 않으셔서 말로 말씀드려야 하기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키워드를 강조해서 말씀드렸다. 다행히 문제 없이 해결되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수정 사항을 보니 부스는 500->1149바이트로 늘어진게 다였고 동아리는 그때 분명 명확히 말씀드린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잘못된 내용만 수정되었다. 결론은 또 말씀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감 직전이라 모두가 힘든 시점 쌤한테도 미안하지만 나도 정말 힘든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또 다시 전처럼 말씀드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기에 대가 기존 세특 기재 내용에 요구 사항을 포함한 형태로 1500바이트를 맞춰 작성해서 드리는 식으로 하기로 했다. 2시간이 있었는데, 한교시는 노트북 사용을 제한하여서 작성하지 못했고 남은 한시간 동안 동아리 하나를 겨유 완성했다. 왜 진행했고 어떤 문제가 있었을 때 어떻게 해결하여 어떤 역량을 보여주는지, 추가적인 문제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결과는 뭐고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등 실험 내용 및 평가가 근거있게 제시되고 흐름도 나름 자연스러워 급하게 작성하긴 했지만 수용해주신다면 사정관과 교수님께 한번이라도 더 눈에 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힘을 내어 또 찾아가게 되었다. 부스 활동은 간을 봐서 말씀드리기로 하고 급한 동아리부터 조곤조곤 말씀드리며 내가 작성한 1500바이트 규격을 맞춘 내용을 보여드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해탈하신 듯 ‘그래 어디 한번 지껄여봐라(긍정적인 의미로)’라는 표정으로 들으셨다. 보내드리는 것까지 성공한 찰나 내가 전부터 요약본에도 쓰고 말씀도 드렸던 실험에서 꼭 필요한 용어를 다시 한번 강조드리니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왜 그게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산화막은 보통 불산으로 제거하기에 만약 일반고에서 그냥 산화막을 제거했다라고만 하면 진실성에서 오해를 살 수 있어 우리가 진행하였던 방안(불산이 염 형태로 있어 산화막 제거에 사용해볼 수 있는 유리 에칭 크림)이 기재되는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듣고 말씀하시길 그건 면접 때 말하면 되지 않느냐, 너희 실험이 이미 고등학교에서는 최상급인데 왜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넣을려고 하냐, 왜 이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냐 등의 답변이었다. 그렇게 두세번 대화를 주고받다 결국 선생님께서는 격양된 말투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고, 나는 그냥 묵묵히 듣는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없는게 아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대화는 결국 알아서 할테니 뭐라 기재되었든 그러려니 해라로 결론났고 나는 반에 돌아가서 왜 이렇게 된건지 회상하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세특을 바라보는 의견 차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20여개 대학 학종 가이드북을 줄줄이 읽고 교육청에서 내용이 좋다는 세특 형식과 기재 내용을 분석하고 각종 자료를 분석하면서 나만의 좋은 세특이란 기준과 어떻게 하면 선생님들께 내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심하며 보고서에 항상 핵심 요약본을 추가하여 작성하였다. 이렇게 하면 세특 기재가 귀찮으신 선생님들은 요약본을 토대로 간단히 작성하시니 그래도 흐름상 나의 탐구가 잘 드러나고 세특 기재에 진심이신 분들도 다시 한번 흐름을 확인하며 더 완성도 높은 방향으로 기재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혹여 잘못되더라도 내 요약본을 보여드리면서 부탁드리면 되기에 한번 이상 찾아가는 일은 정말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요약본에 정리해둔 내용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기재되었고, 아무리 탐구 과정을 명확히 하고 동기-서본결-결론-심화탐구 구조를 명확히 해도 내 기준에서는 단순히 심화탐구를 했다로 다소 추상적으로 요약되었기에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아무리 말씀드리고 강조해도 결국 반영이 되지 않았기에 많이 찾아가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기재가 되었나? 선생님 의견을 이러했다. 너희가 실험 했다는 내용, 산화막을 제거했다는 내용, 배선을 했다는 내용만 있으면 되지 굳이 구체적인 내용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느냐? 차라리 보여준 역량을 더 길게 작성하는게 낫지 않느냐라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대한 나의 의견은 이러하다. 대학은 제 3자의 관점에서 세특을 보며, 심지어 하나의 세특을 몇 분만에 읽어내린다. 이런 와중 구체적인 내용이나 탐구 전개 흐름 없이 사실만 간략히 써있고 거기에 무슨 역량이 허무맹랑하게 기재되어 있다면 이걸 정말 믿고 집중하여 봐줄까? 물론 실험을 진행하고 그걸 지켜본 시점에서는 상관없지만 그냥 산화막을 제거하여 전극을 제거했고 거기에서 협업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줬다는게 과연 진정성이 느껴지는지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원했던건 어떤 점에서 착안하여 무엇으로 산화막을 제거했고 과거 어떤 경험에서 경험한 바를 근거로 무엇으로 전극 형성을 시도하는 것을 보니 어떤 역량이 보인다와 같이 좀 더 스토리가 있고 흐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다 주저리 주저리 쓰자는 의견은 아니다. 불필요한 내용(의미없는 세부사항)을 과감히 포기하고 핵심 내용에 깊이와 이야기를 더해 작성되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의견이다. 모르겠다. 내가 학생 신분인데 더 이상 간섭할 권한은 없다. 의견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1100바이트짜리 개세특은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뭘 할 수 있는게 없다. 상황이 이런데 중앙대 융합형 심지어 인원도 10명에서 4명으로 줄어들은 학과를 지원하는게 가능할까? 이런 세특으로 좋은 실험 기구와 심화된 주제를 가지고 탐구한 그들을 이기고 30명 중에 1등으로 합격한다는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솔직히 모르겠다. 명확한 답변은 못할 것 같다. 내 세특이 충분히 좋은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이런 일까지 겪으니 머리가 어지럽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다. 성적은 내가 올릴 수 있지만 생기부는 어쩔 수가 없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만반의 준비를 하여 과학고를 가지 않았을까 싶다.
